건강과 생태 이야기/귀농 이야기

귀농하면 한 달 얼마나 버냐고요? (오마이뉴스 기사)

치유삶 2009. 11. 1. 09:41
귀농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버냐고요?
[오마이뉴스] 2009년 10월 31일(토) 오전 10:32   가| 이메일| 프린트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
밥벌이에 자유롭지 않은 서민이나 '농사지으면 장가 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청춘에게 귀농하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사진은 모내기를 위해 모판에서 옮겨놓은 어린모.
ⓒ 조찬현


지난 주 한 신문사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원자재 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 회장은 "진로를 고민한다면 농업분야에 뛰어들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또 "앞으로 세계경제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원자재가격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나빠질 경우 각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결국 실물자산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그중에서 농작물 가격의 상승이 두드러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면서 자신이라면 한국비무장지대 근처에 농지를 사두겠다면서 투자차원에서 수익률이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얼마 전에는 욘사마라 불리는 배우 배용준씨가 농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 이상 농부가 된다는 것이 소수의 선택이 아니라 주류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투자가의 조언과 유명한 배우의 꿈을 따라서 농부가 될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는 대개 투자할 돈이 많은 자본가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배우도 아니다. 돈벌이가 아니라 매일 먹고 사는 문제인 밥벌이에 자유롭지 않은 서민이고 '농사지으면 장가나 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청춘에게 귀농하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귀농은 올인(all-in)하는 것이다. 도시의 집과 직업, 이웃을 완전히 정리하고 내 인생의 새로운 개척지에 모든 것을 거는 일이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귀농학교에서는 그래서 귀농을 결정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귀농을 포기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성과로 삼고 있다. 조급한 마음과 섣부른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천천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 번 실패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지난 97년 구제금융 때 정부의 귀농정착융자금만 믿고 깊은 고민과 준비 없이 농촌으로 간 사람들이 빚을 짊어지고 다시 도시로 돌아온 뼈아픈 사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억대 수익 올리는 농부? 대체 어디 이야기인지


귀농을 소재로 만든 SBS 교양프로그램 <농비어천가>
ⓒ SBS


"고소득 보장"이라고 돼 있는 광고는 본래 사기성이 농후하다. 농업이 블루오션이라면서 큰 돈벌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들이 요새 늘고 있다. 지금은 "블루베리가 재미가 좋다"면서 돈 벌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몇 년 전에는 그게 오미자였다"고 말해줘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매스컴에선 쉴 새 없이 부자가 된 농부를 내세우며 현혹한다.


만일 당신이 '도시에서 월 300~400만원은 벌었으니까, 시골에 가서는 최소 월 200만원 이상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귀농을 다시 고려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귀농자는 물론 평생을 농사지어온 분들도 쉽지 않다. 돈을 벌려면 도시에 남아있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낫다. 억대농부가 가능하다고 매스컴이 난리다. 내가 아는 한 귀농자가 그런 소득을 올렸다고 들어본 예가 없을뿐더러 더러 있다고 해도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품투성이다.


홍성으로 귀농한 9년차 한 귀농선배는 부부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어 한해 24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주변에서 '독종'이라고 불리는 그 선배부부보다 더 부지런할 수 있는 귀농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억대농부라니 어떻게 하면 그만큼 벌 수 있을까? 


"귀농해서 얼마나 소득을 올려야 먹고사나요?"


"얼마나 소득을 올릴 수가 있을까요?"


자주 듣는 말이지만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건축가들도 자주 듣는 질문이 있는데 '건축비가 평당 얼마나 들까요?'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준다고 한다. "평당 100만원에서부터 1억원까지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해줄 수 있습니다."


소득 올리고 싶으면 밤에 랜턴 켜고 농사지어야 한다


어떤 귀농자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다. 한 사람이 자신이 지난 달에 30만원밖에 안 썼다고 은근 자랑을 하니까 옆에 있던 선배 귀농자가 대뜸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 써대면서 어찌 살아갈꼬?" 좀 오버한 느낌도 있지만 농사를 짓고 살면 큰돈을 들일 일이 없다. 누구는 200만원도 부족할 테지만 누구는 100만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


어떤 조직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생태귀농운동을 낭만귀농이라고 분류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온 적이 있다. 겨우 텃밭정도의 규모에 농소득도 부진한 것을 귀농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면서 우리를 비웃는 것이 틀림없다. 근데 웃음이 나는 것은 어떤 귀농자의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귀농을 했는데 소득이 너무 적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농지를 더 빌리고 기계도 사는 등 영농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수확 철이 다되어 사람 품이 필요한데 품값을 치를 돈이 없어, 자신은 도회지로 일을 나갔단다. 그렇게 자신이 밖에서 벌어온 돈으로 품값을 치르는데 이건 뭐가 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단다. 분명 효율성과 이윤을 따진다면 이게 나은 방식이긴 한데 뭔가 뒤바뀐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농부 빠홈의 비극적인 결말이 떠오른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욕심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다. 소박하지만 지금 바로 여기에서,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많은 이들이 불확실한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좇다가 젊음도 가족도 건강도 잃는다.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살 수 있건만,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욕심으로 인생을 저당 잡힌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생활도 힘든 금욕적인 삶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소를 타듯 한쪽은 돈벌이, 다른 한쪽은 행복을 놓고 균형을 찾아야한다. 소득을 많이 올리려면 광부처럼 밤에도 헤드 랜턴을 켜고 농사를 지어야한다.


귀농, 직업 아닌 정년 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켜야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온전히 독립된 인격으로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농부의 삶'이다. 사진은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 스튜디오 느림보


정답은 없지만,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월 50만원 정도 농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이미 성공한 귀농자다. 거기에 만족할 수 있다면 주변에 피어나는 풀꽃에 눈길을 줄 수 있고 끼니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혼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약초를 찾아 산을 돌아다닐 시간도 생길 것이다.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고 누군가를 시켜야 할 필요도 없이 내가 온전히 독립된 인격으로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농부의 삶이다. 소득에 천착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농사만 짓고 살 일이 아니다. 농촌에 모두가 농사만 짓고 사는 농민들밖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농촌사회도 사람 사는 곳이니 치과의사, 예술인, 교사, 보일러기사와 같은 사람들이 당연 필요하다. 귀농자들이 도시에서 써먹던 기술을 잘 쓴다면 마을공동체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녹색일자리, 일자리 한다지만 귀농은 일자리나 직업의 선택이 아니다. 삶의 뿌리를 통째로 옮겨 다시 심는 일이며 정년 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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