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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급여가 나오는 농사 시스템 구상 | ||||||||||||
안천면 신괴리 지사마을 정석모·한정희 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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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은 선택이다. 하지만 귀농하고자 하는 선택이 온전한 자기의지로만 작용하는 예는 드물다. 주위 환경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뤄지는 귀농이 많다.
귀농인 정석모(32)·한정희(30) 부부도 귀농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만 얘기할 수는 없다.
도시에서 하던 가구인테리어 일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경우가 많아 허리가 아픈 정씨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요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정씨였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었으나 농사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픈 몸이라 일을 도와달라는 이들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정씨였지만 농사에 바쁜 농촌에서 일손을 전혀 보태지 않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쉬운 일부터 부모님의 농사를 조금씩 도왔다. 한 가지 만지다 보니 두 가지가 손에 잡혔고, 이것을 들다 보니 저것도 들 수밖에 없었다. '농촌이니 어쩔 수 없지'하며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농사에 관여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시에서 일을 할 때는 허리 때문에 고생고생 하다가 결국 일을 포기했는데, 농사는 달랐다. 하면 할수록 허리의 통증이 사라져만 갔다. 아니, 통증이 사라지는 걸 느끼지도 못했다. 그저 어느 날 생각해 보니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걸 느꼈을 뿐이다. 신기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농사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귀농을 결단할 사이도 없이 정씨의 삶이 귀농이 되었던 것이다. 2003년에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도시에서 연애를 했던 아내 한정희 씨와 2004년 결혼을 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만 살아왔던 아내 한정희 씨는 남편만을 바라보고 농촌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온 그녀도도 귀농을 한 셈이지만 결코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다. 남편이 좋아 결혼했고 그가 있는 곳이 농촌이어서 선택된 귀농이었다. 처음 시작한 작목은 영지버섯이었다. 지금은 많은 농가에서 재배를 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진안군에서 영지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는 드물었다. 그런 만큼 재배기술을 습득하는 게 여의치 않았다. 작목반 회원들과 함께 타 지역의 선진 농가를 찾아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처음 도전하는 작목 치고는 작황이 좋았다. 하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애써 키운 작물을 도매상에 넘겼는데 도매상인은 생산지 가격의 두 배로 시장에 넘겼다. 농민은 고생해서 키웠는데, 중간 상인은 다리 역할만 하고 똑같은 이득을 취한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초보 농사꾼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의 구상이 아직은 주위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지는 못했다. 정씨는 보수성이 강한 농업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농사 외에도 '한농연'이나 '방범대' 등의 활동도 외면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정석모 씨는 일정 급여가 나오는 농사 시스템을 만드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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