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옥의 생태이야기] 맹그로브 숲 파괴하는 수입 새우
새우는 한 번에 수십 만 개의 알을 낳는다. 그래서 선조들은 새우를 생명력이 넘치는 해산물로 여겼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시집오면 새우처럼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에서 새우 알을 먹였다. 장수의 상징이었던 새우는 한방에서 치료제로 쓰이기도 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새우가 회충을 없애주며 입안이 헐거나 몸이 가려울 때 효험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새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 때문이다. 미식가들은 머리 바로 아래 부위인 새우골의 맛을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바다새우는 대하, 보리새우, 도화새우, 젓새우, 돗대기새우, 봉동새우, 꽃새우, 각시새우가 대표적이다. 국산 민물새우로는 새뱅이, 가재, 징거미새우 등이 있다. 하지만 요즘 시중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흰다리새우’ 아니면 동남아시아산 ‘블랙타이거 새우’다. 구별이 쉽지 않은 탓에 전자는 ‘대하’로, 후자는 ‘보리새우’로 둔갑해 팔리기도 한다. 원산지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국내 새우양식의 90% 이상은 중남미에서 들여온 흰다리새우가 차지한다. 대하보다 바이러스에 강해 생존율이 높기 때문이다.
외국산 새우들은 대체로 값이 싼 편이다. 하지만 생태계 입장에서는 공공의 적에 가깝다. 최근 미국 오리건대학 과학자들은 동남아산 양식새우 100g의 탄소발자국이 198㎏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아마존 숲을 벌목해 조성한 농장에서 소를 키워 얻은 쇠고기보다 탄소발자국이 열 배나 많다. 휘발유로 치면 신형 경차로 서울과 부산을 두 차례나 왕복할 수 있는 양인 90ℓ와 맞먹는다. 탄소발자국은 상품의 생산에서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을 합산해 나타내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반추동물인 소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 효과가 25배나 강력한 메탄가스를 내뿜는다. 이런 점 때문에 기온 상승을 멈추려면 쇠고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미국에서는 4인 가족이 쇠고기 스테이크를 일주일에 한 번만 먹지 않으면 석 달 동안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통계가 발표됐을 정도다. 그렇다면 외국산 양식새우가 쇠고기보다 탄소발자국이 10배나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은 왜일까.
새우양식장을 만들면서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맹그로브 숲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어귀에 쌓인 미세한 흙과 모래 위에서 발달한다. 뿌리와 줄기는 소금물에 잘 견디는 조직과 침수에 몸을 잘 지탱하고 호흡을 위해 서로 얽힌 공기뿌리를 갖고 있다. 맹그로브 숲은 물고기와 새들을 포함해 수많은 동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집채만한 해일의 파괴력을 누그러뜨리고 육지의 영양분이 바다로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맹그로브 숲의 진정한 가치는 어떤 생태계보다 뛰어난 탄소저장능력에 있다. 오리건대학 과학자들은 맹그로브 숲 1만㎡를 없애고 새우양식장을 만들었을 때 방출되는 이산화탄소가 평균 1472t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양식장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새우는 모두 합해 최대 0.5t에 불과하다.
맹그로브와 해조류 숲, 염습지 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생태계에 속한다. 연평균 2.7%씩 파괴되고 있어 그 속도가 열대우림보다 4배나 빠르다. 특히 맹그로브 숲은 지난 반세기 동안 양식장 조성, 땔감 채취, 연안개발 탓에 30%가량 사라졌다. 지금 같은 속도라면 100년 뒤에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게 될지도 모른다.
동남아 새우양식장들은 보통 다섯 해가 지나면 쓸모가 없어진다. 바닥에 진흙이 쌓이고 독성이 강한 황산화물이 생성되면서 양식이 더는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맹그로브 숲은 열대지방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식탁에 블랙타이거 새우가 오르는 순간 우리는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는 공범이 되고 만다. 새우를 먹더라도 어떤 종을 선택할 것인지는 순전히 자연의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능력에 달렸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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